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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서 전하는 말 · 읽는 데 22분

할머니 추도사: 15세부터 45세까지 손주가 쓴 예문

15세에서 45세 손주가 쓴 할머니 추도사 다섯 편과 할아버지 추도사 한 편. 사촌 셋이 나눠 읽는 글도 있고, 편마다 읽는 시간을 적었습니다.

글: Goodbye App 팀 · 2026년 9월 30일

어두운 부엌 조리대 위에서 부드러운 반죽 덩어리를 빚고 있는 나이 든 여성의 두 손
사진: juliane Monari, Pexels

집안 어딘가에서, 아마 전화로, 아마 서둘러서, 장례식에서 손주 가운데 한 사람이 몇 마디 하기로 정해졌고, 그 손주가 바로 나입니다. 이제 할머니 추도사를 써야 합니다. 평생 할머니를 사랑해 왔지만, 그 자리에서는 나보다 더 오래 할머니를 사랑한 사람들 앞에 서게 됩니다. 그중 두 분은 나를 키워 주신 분일지도 모릅니다.

아래에는 할머니를 위한 추도사 다섯 편과 할아버지를 위한 추도사 한 편이 있습니다. 열다섯 살 손녀부터 사십 대 손자까지, 손주들의 목소리로 쓴 글입니다. 한 편은 사촌 셋이 함께 읽도록 썼습니다. 글마다 위에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적었고, 끝에는 그 글이 왜 통하는지, 어떻게 읽으면 좋은지 한두 줄씩 덧붙였습니다. 추도사 다음에는 특히 손주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할머니의 자녀들 앞에서 말하는 법, 그리고 이 가운데 한 편을 내 이야기로 바꾸는 법입니다.

할머니 추도사가 손주에게 바라는 것

나는 할머니의 자녀들 앞에서 말하게 됩니다. 그중 한 분은 방금 어머니를 잃은 내 어머니나 아버지입니다. 고모와 이모, 삼촌들도 같은 줄에 앉아 계십니다. 내가 할머니에 대해 하는 말은 모두 조용히 그분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문장이 되기도 하고, 그분들은 그렇게 듣습니다. 그래도 말하세요. 다만 그 말이 그분들이 잃은 것과 겨루지 않도록 하세요.

나는 아마 할머니의 마지막 몇십 년만 알았을 것입니다. 내가 만난 할머니는 이미 할머니였습니다. 자녀들이 기억하는 모습보다 느리고, 부드럽고, 시간은 많고 규칙은 적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할머니의 모습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쉽고, 서른 살의 할머니를 알던 분들이 뒤에 앉아 계신데 내가 일어설 자격이 있나 싶어지기도 합니다.

사촌은 여럿인데 자리는 하나입니다. 손주가 여덟이나 열둘인 집안에서 추도사가 여덟 편, 열두 편 나오는 일은 드뭅니다. 가뜩이나 힘든 한 주에, 누가 말할지를 두고 작은 다툼이 생기기도 합니다.

할머니의 생애는 약력과 자녀들이 이야기할 것입니다. 내가 맡은 것은 그 생애 가운데 할머니 댁에서 일어난 부분입니다. 학교가 끝나면 들르던 부엌, 여름마다 찾아가던 날들, 일요일마다 걸려 오던 전화, 다른 어디에서도 통하지 않던 규칙들. 그 할머니는 진짜였고, 어떤 면에서는 자녀들이 겪은 어머니와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를 그려 낼 수 있는 사람은 손주들뿐이고, 이번에 일어서는 사람은 나입니다.

내 이야기와 가장 가까운 예문 고르기

여기 나오는 할머니들은 모두 지어낸 인물입니다. 외할머니나 할매라고 적힌 자리에는 우리 집에서 부르던 호칭을, 찐 고구마가 놓인 자리에는 할머니의 음식을 넣으세요. 추도사마다 뒤에 붙인 설명이 그 글을 살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니, 내 재료로도 똑같이 해 보면 됩니다.

다른 것은 하나도 맞지 않더라도 상황이 내 처지와 가장 가까운 추도사에서 시작하세요. 그다음 글 위에 적힌 시간을 내게 주어진 시간과 견주어 보세요. 시간은 사람이 가득한 자리에서 천천히 읽는 속도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약 3분 30초, 세 사람이 나눠 읽는 글은 약 4분, 십 대 손주의 글은 약 2분이 걸립니다.

1~2분짜리가 필요하다면 짧은 추도사 예시에 그런 글들이 있고, 길이에 대한 자세한 답도 함께 있습니다. 본보기보다 빈 종이에서 시작하고 싶다면 단계별 방법은 추도사 쓰는 법 안내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 쓰는 글이라면 어머니 추도사 예문을 따로 모아 두었습니다.

할머니 손에 자란 손녀가

소리 내어 읽으면 약 3분 30초입니다. 어머니가 일하는 동안 할머니가 등하굣길과 방과 후 시간을 맡아 주셨던 삼십 대 여성의 추도사입니다.

다섯 살부터 열두 살까지 할머니는 날마다 세 시 십오 분에 교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셨고, 그 뒤로는 제가 혼자 할머니 댁까지 걸어갔습니다. 할머니는 늘 일찍 나와 계셨고, 늘 같은 파란 외투를 입고 계셨습니다. 네 시가 되면 할머니 부엌 식탁에 두 가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설탕을 너무 많이 탄 미숫가루 한 잔, 그리고 찐 고구마 한 개.

저희 집은 그렇게 돌아갔습니다. 엄마는 병원에서 낮 근무를 하는 간호사였고, 오후는 할머니 몫이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교 가는 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할머니는 그 식탁에서 제 맞은편에 앉아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누가 우리 똥강아지한테 잘해 줬니?” 똥강아지는 저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저를 그렇게 부를 수 없었습니다.

‘오늘 뭐 배웠니’가 아니었습니다. ‘말 잘 들었니’도 아니었습니다. ‘누가 너한테 잘해 줬니’였습니다.

일곱 살 때 제 대답은 대개 연필을 같이 쓰자던 소연이라는 아이였고, 할머니는 그것이 중요한 소식이라도 되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실제로 중요한 소식이었습니다. 아무도 없었다고 대답한 날도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것을 서둘러 고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미숫가루를 한 잔 더 타 주시고는 “그럼 내일은 네가 먼저 해라” 하셨습니다. 그 말이 내일은 네가 잘해 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다.

열다섯 살이 되자 저는 대답을 멈췄습니다. 한 해 가까이 이어폰 한쪽을 꽂은 채 그 식탁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그래도 날마다 물으셨습니다. 그러다 학교생활이 가장 힘들던 11월의 어느 오후, 저는 이어폰을 빼고 할머니께 전부 털어놓았습니다. 할머니는 한 번도 말을 끊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말을 마치자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고맙다. 그럼, 오늘은 누가 너한테 잘해 줬니?” 제가 “할머니요” 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래, 시작은 됐네” 하시고는 고구마를 하나 더 까 주셨습니다.

저녁 여섯 시면 엄마가 병원에서 돌아오셨고, 엄마가 외투를 벗기도 전에 할머니는 그날 하루를 엄마에게 넘겨주셨습니다. 누가 잘해 줬는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제가 무엇을 먹었는지. 엄마, 오후는 할머니 몫이었고 저녁은 엄마 몫이었는데, 저는 그 사이에서 빈틈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엄마는 제가 그 모든 걸 누릴 수 있도록 일하셨던 거예요. 두 분은 한 팀이었고, 저는 그 가운데 있었던 운 좋은 사람이에요.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기운이 좋으셨던 오후, 저는 네 시에 할머니 침대 곁에 앉아 그 질문을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늘 제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던 것처럼 제대로 생각해 보셨습니다. 그러고는 간호사 두 분과 식판을 날라 주시는 아저씨, 그리고 우리 엄마를 꼽으셨습니다. 그다음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네 차례다.”

그래서 여러분께 작은 부탁을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늘 누가 잘해 줬는지 물어보세요. 그리고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가만히 앉아서 그 대답을 끝까지 들어 주세요.

이 글이 통하는 이유: 듣는 사람들은 일곱 살에, 열다섯 살에, 그리고 할머니의 병상 곁에서 같은 질문을 듣고,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게 됩니다. 할머니가 손녀를 부르던 별명을 한 번 말하는 것만으로 이 손주만 가졌던 것이 드러납니다. 섬세한 일은 엄마에게 건네는 문단이 합니다. 엄마를 엄마의 어머니와 견주지 않으면서 고마움을 전하고, 엄마를 그 오후들 바깥에 세워 두는 대신 그 오후들의 한몫을 엄마에게 드립니다.

멀리 살던 손자가

소리 내어 읽으면 약 3분 30초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자라 일 년에 한 번 할머니를 뵈었고, 할머니의 언어는 절반밖에 하지 못했던 손자의 추도사입니다.

저는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처럼 할머니를 알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비행기로 아홉 시간 떨어진 곳에서 다른 언어로 자랐고, 해마다 여름에 삼 주 동안 할머니를 뵈었습니다. 나머지 기간 동안 할머니는 일요일 오후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언어를 절반쯤 했습니다. 할머니는 제 언어를 거의 못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요일마다 어머니가 전화기를 건네주면 할머니는 빠르고 따뜻하게 말씀하셨고, 저는 세 마디 중에 한 마디쯤 알아들었습니다. 얼마쯤 지나자 저는 단어를 쫓아가기를 그만두고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 주에 할머니 무릎이 안 좋으신지, 저를 걱정하고 계신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엉뚱한 자리에서 네, 아니요, 고맙습니다를 말했고, 할머니는 한 번도 고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할머니가 바라던 대화를 우리가 나누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위해 제 언어로 세 마디를 배우셨습니다. 안녕. 먹어. 컸다. 그게 전부였는데, 할머니는 그것을 기막히게 쓰셨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공항에서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고 “안녕. 컸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아파트에 도착하면, 제 가방이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먹어.” 그보다 훨씬 길면서 훨씬 덜 전한 대화를 저는 수없이 해 보았습니다.

그 여름들에는 정해진 모양이 있었습니다. 5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의 열기. 낡은 깡통에 심은 허브로 가득한 발코니. 제가 머무는 동안 할머니가 날마다 끓여 주시던 수프. 일곱 살 때 제가 그 수프가 좋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그 말을 앞으로 이십 년 동안 지킬 지시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그 거리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 그 언어를 끝내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사촌들은 매주 할머니를 만났는데 저는 일 년에 한 번 만난 것. 이번 주에 저는 그 짐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할머니는 삼 주를 너무 짧다고 여기신 적이 없습니다. 삼 주를 삼 주로 대하시고 하루하루를 꽉 채우셨고, 제가 떠날 무렵이면 벌써 다음 여름까지 날을 세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그 거리를 두고 저를 탓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먼 곳에서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해마다 제가 떠날 때면 할머니는 아파트 문간에서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그 말을 할머니의 언어로, 할머니가 한 번도 탓하지 않으셨던 제 억양 그대로 해 보겠습니다. [할머니가 하시던 말, 소리 나는 대로 적어서.] 대략 이런 뜻입니다. 조심해서 가라, 비행기 내리면 전화해라.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할머니께, 그리고 날마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셨던 여기 계신 모든 분께. 저는 그 언어의 나머지를 어머니에게서 매주 조금씩 배우려고 합니다. 그 언어로 할머니와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여러분을 모두 알아듣기에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하시던 말], [할머니를 부르던 호칭]. 조심해서 가겠습니다.

이 글이 통하는 이유: 거리 이야기는 첫마디에 나오고, 죄책감은 사과하는 대신 모두 앞에서 내려놓습니다. 듣는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멀리 살았는지 이미 압니다. 그들이 듣고 싶은 것은 그 여름들이 어땠는지입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언어로 된 한 문장이, 그의 언어로 된 한 문단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냅니다. 그 문장은 그 언어를 하는 사람과 함께 미리 연습하고, 원고에는 소리 나는 대로 적어 두세요. 그래야 연단에서 철자 때문에 막히지 않습니다.

치매: 외할머니가 나를 엄마 이름으로 부르실 때

소리 내어 읽으면 약 3분 30초입니다. 어머니가 맨 앞줄에 앉아 계신 자리에서 말하는 삼십 대 손녀의 추도사입니다.

생의 마지막 몇 해 동안 외할머니는 저를 엄마 이름으로 부르셨고, 저는 그렇게 부르시도록 두었습니다.

엄마 이름은 은희입니다. 저는 지수입니다. 처음 몇 달은 외할머니가 저를 “은희야” 하고 부르실 때마다 바로잡아 드렸습니다. “외할머니, 저예요. 지수예요.”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 얼굴에는 작은 걱정이 스쳤습니다. 어디서 틀렸는지 찾을 수 없는 실수를 하신 것처럼요. 저는 외할머니께 계속 그런 일을 겪게 해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일요일, 저는 그냥 은희라는 이름에 대답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제가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웃으셨습니다.

저를 은희라고 여기실 때면 외할머니는 어린 엄마에게 하셨을 법한 말투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밖이 추우니 내복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학교 바느질 숙제는 다 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빵집 그 남학생이 아직도 집까지 바래다주느냐고 물으시고는, 아주 진지하게, 눈은 선한데 장래성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남학생이 저희 아빠입니다. 지금 엄마 옆에 앉아 계십니다. 장래성은 괜찮게 풀렸습니다.

외할머니는 제가 학년에서 수영이 제일 빠르다고, 한 번도 보러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교장 선생님께 맞선 일이 자랑스럽다고도 하셨습니다. 그 교장 선생님은 실제로 계셨다고 엄마가 나중에 확인해 주셨습니다. 서른네 해 동안 아무도 제게 그 교장 선생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한 주 한 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소녀를 알아 갔습니다. 수영은 빠르고 바느질은 서툴고, 교장 선생님과 말다툼을 하고, 빵집 남학생이 집까지 바래다주게 두던 소녀. 사십 년이 지나서도 그 아이가 춥지는 않은지 여전히 걱정하실 만큼 외할머니가 사랑하신 소녀.

엄마는 삼 년 동안 아침마다 출근 전에 차를 몰고 외할머니께 들르셨습니다. 어떤 오후에는 우리 중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외할머니께 전혀 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요일마다 저는 엄마 자리에 앉아, 외할머니가 내내 딸에게 하고 싶으셨던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마지막 부분은 엄마에게 하는 말입니다.

엄마, 저는 늘 엄마 대신 그 자리에 있었던 것뿐이에요. 그 일요일마다 외할머니가 하신 말씀은 전부 엄마에게 하신 말씀이었어요. 엄마 수영하는 걸 한 번도 보러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교장 선생님 일로 엄마를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장래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셨든, 아빠 눈은 선하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엄마가 내복을 입었으면 하셨어요. 밖이 추우니까요. 저는 찾아뵐 때마다 그 말씀을 요양원 주차권 뒷면에 전부 적어 두었어요. 제 가방 속 봉투에 백마흔 장이 들어 있어요. 이건 엄마 거예요.

외할머니, 그 소녀를 만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아는 가장 좋은 이름으로 저를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이 통하는 이유: 가장 힘든 사실은 첫 줄에 나오고, 이 추도사는 병을 설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 시간을 지낸 사람들에게 그 몇 해가 어땠는지를 말합니다. 혼란은 집안의 역사가 되고, 마지막에 추도사는 맨 앞줄에 앉은 진짜 청중에게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거쳐 엄마에게 전해진 말을 엄마 손에 쥐여 줍니다. 이런 추도사는 그날이 오기 전에 부모님께 먼저 보여 드리세요. 그 말들은 부모님을 향한 것이었으니, 어느 말을 소리 내어 읽고 어느 말을 봉투 속에 남길지는 부모님이 정하시게 하세요.

십 대 손주를 위한 짧은 추도사

열다섯 살 손녀가 자기 말로 쓴 짧은 할머니 추도사로, 소리 내어 읽으면 약 2분입니다.

저는 하은이고, 할머니 손주들 중에 막내예요.

할머니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문자에 마침표를 찍는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모든 문자에요. “하은아. 할머니다. 이겼니.” 물음표는 없어요. 한 번도요. 그리고 문자마다 하나도 빠짐없이 끝에 “사랑한다. 할머니가.”라고 쓰셨어요. 할머니 폰으로 다른 사람이 문자를 보낸다고 제가 착각할까 봐요.

“이겼니”는 축구 이야기였어요. 토요일마다 물어보셨어요. 할머니는 축구를 하나도 모르셨어요. 골키퍼를 “뛰어다니면 안 되는 애”라고 부르시면서 진짜 불쌍해하셨어요.

작년에 시험이 시작됐을 때는 매일 아침 일곱 시에 문자를 보내셨어요. “하은아. 시험 잘 봐라. 너는 똑똑하다. 사랑한다. 할머니가.” 삼 주 동안 매일 아침이요. 제가 늘 답장한 건 아니에요. 더 많이 답장할걸 그랬어요. 그래도 하나도 안 지우고 다 뒀어요. 제 폰에 할머니 문자가 이백열한 개 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똑같이 끝나요.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봤을 때, 할머니가 사진 보내는 법을 알려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알려 드렸어요. 할머니는 식탁 건너편에서 제 사진을 찍으시더니 바로 저한테 보내셨어요. 문자에는 “이게 너다. 사랑한다. 할머니가.”라고 적혀 있었어요.

할머니 집에서는 비가 오면 저녁 먹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됐어요. 그게 할머니 규칙이었어요. 할머니 집에는 비가 진짜 자주 왔어요.

이걸 어떻게 끝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하러 온 말을 다 했으면 거기서 멈추는 거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할머니처럼 멈출게요. 사랑해요. 하은이가.

곁에서 돕는 어른께: 말할지 말지는 십 대 아이가 고르게 하고, 당일에 마음을 바꿔도 되게 해 주세요. 어른 눈에는 다듬고 싶은 부분이 있더라도 아이의 말을 그대로 두세요. 마침표가 우스운 것은 열다섯 살이 그것을 알아챘을 때뿐이기 때문입니다. 원고는 큰 글씨로 인쇄하고, 아이가 믿는 어른이 사본을 들고 옆에 서 있게 하세요. 2분이면 충분하고, 그보다 짧아도 괜찮습니다.

손주 여럿이 함께 추도사를 할 때

네, 장례식에서 손주 여럿이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세 편을 차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목소리를 위해 쓴 추도사 한 편을 나눠 읽는 것입니다. 저마다 한 부분을 맡으면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사람이 없고, 듣는 사람들은 할머니를 세 방향에서 한 번에 만나게 됩니다. 아래 추도사는 사촌 세 사람이 읽는 글로, 소리 내어 읽으면 약 4분입니다. 저마다 할머니 집의 한 곳씩을 맡고, 마지막 줄은 셋이 함께 말합니다.

맏이: 저희는 손주가 열한 명이라서, 할매라면 하셨을 대로 했습니다. 집을 공평하게 나눴는데, 그러는 데 이틀이 걸렸습니다. 나머지 여덟 명은 저희 뒤에 서 있고, 이름은 순서지에 적혀 있습니다. 저는 맏이이고, 부엌을 맡았습니다.

할매 부엌은 저희 모두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 곳입니다. 거기서는 빈손으로 앉아 있으면 안 됐습니다. 여섯 살쯤 처음 자고 가는 날이면, 할매는 작은 칼 한 자루와 감자 한 소쿠리를 주시면서 “얇게 깎아라. 감자도 다 돈이다” 하셨습니다. 삼십 년 동안 일요일마다 할매 밥상에는 아홉 명에서 스무 명이 둘러앉았는데, 모두 앞에 밥이 놓이기 전에 할매가 먼저 앉으시는 걸 본 사람은 저희 중에 아무도 없습니다. 할매는 냄비 하나로 저희 모두를 먹이고도 누구든 반찬 통 하나씩 들려 집에 보내셨습니다. 한번은 왜 먼저 드시지 않느냐고 여쭤봤습니다. 할매는 “만들면서 먹는다. 간은 누가 보는 줄 아나?” 하셨습니다.

둘째: 저는 마당을 맡았습니다. 할매 마당은 거의 빨랫줄이었습니다. 콩이 한쪽 구석을, 장미가 다른 구석을 차지했지만, 중요한 건 빨랫줄이었습니다. 할매가 이야기를 들어 주시는 곳이 빨랫줄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마당에 나가 할매에게 빨래집게를 건넸습니다. 할매는 우리가 말하는 동안 한 번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으셨습니다. 널고 계신 이불 홑청을 보셨는데, 이상하게도 그래서 말이 나왔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에 세 번 떨어진 것도 거기서 말씀드렸습니다. 서울로 이사 간다는 것도 거기서 말씀드렸습니다. 결혼한다는 말은 제 부모님보다 할매께 먼저 했는데, 할매는 베갯잇 하나를 다 너신 다음에야 말씀하셨습니다. “잘됐다. 그 사람은 빨래를 반듯하게 갠다.”

막내: 저는 안방을 맡았습니다. 안방은 귀한 손님을 모시는 방이었고, 소식을 전하는 방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다들 부엌에 있었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할매는 우리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문을 닫으셨습니다.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그랬습니다. 아기가 생긴 소식. 시험 결과. 할아버지 일로 걸려 온 전화. 할매는 창가의 초록색 의자에 앉으시고 우리는 소파에 앉았는데, 할매는 한마디도 하시기 전에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으셨습니다. 그러고는 주전자를 불에 올리셨고, 그건 다 괜찮아질 거라는 뜻이었습니다. 할매가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간 마지막 손주가 저였습니다. 봄이었습니다. 할매는 당신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시고는, 제 시험은 어떻게 됐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쪽이 더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하시면서요.

맏이: 저희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할매 집 뒷문으로 들어서는 사람은 누구나 같은 말을 외쳤습니다. “할매?” 그러면 집 안 어딘가에서 할매가 대답하셨습니다. “여기 있다.”

둘째: 아침에는 부엌에서. 오후에는 마당에서.

막내: 중요한 일이 있는 저녁에는 안방에서.

맏이: 이제 집이 조용하니, 오늘은 저희가 대답하겠습니다.

셋이 함께: 할매, 여기 있어요. 저희 모두요.

이 추도사는 할머니를 장소로 나눕니다. 사촌들이 모두 같은 시기에 할머니를 알았을 때 잘 맞는 방법입니다. 나이 차가 수십 년에 걸친다면 대신 시기별로 나누세요. 그러면 같은 이야기를 두 번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순서는 다 함께 모여 소리 내어 한 번 맞춰 보세요. 그래야 자기 차례를 놓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말하는 사람마다 자기 대목에 표시한 인쇄본을 한 부씩 주고, 한 사람이 목이 메면 누가 이어 읽을지 미리 정해 두세요. 맡고 싶은 사람이 서너 명을 넘거나 성당이나 교회에서 한 사람만 말하도록 허락한다면, 한 사람이 읽는 동안 나머지는 일어선 채 이름을 소개받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식사 자리에서 말하게 하세요. 손주 가운데 한 사람이 모든 손주를 대신해 추도사를 해야 한다면, 맏손주나 할머니와 가장 가까웠던 손주가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하지만 알맞은 사람은 사촌들이 함께 동의하는 사람입니다.

손자가 할아버지께 드리는 추도사

사십 대 손자가 전하는 할아버지 추도사로, 소리 내어 읽으면 약 3분 30초입니다. 젊은 시절의 고생을 혼자 간직하셨던 분을 위한 글입니다. 손녀도 거의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제가 만난 누구보다 말씀이 많으셨습니다. 버스 기사님에게도, 신문 가판대 아저씨에게도, 텔레비전에게도, 그리고 저에게도,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야구, 쌀값, 수박이 잘 익었는지 알아보는 법. 거의 모든 것. 할아버지가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으신 주제는 단 하나, 당신 생의 첫 스물다섯 해였습니다. 여쭤보면 “뭐, 일했지” 하시고는 다시 수박 이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할아버지의 여동생인 옥순 고모할머니께서 두 분이 태어난 고향에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고모할머니는 사십 분 동안, 할아버지가 사십사 년 동안 제게 하지 않으신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열한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와 함께 벽돌 공장에서 일하셨습니다. 열아홉에는 주소 하나 적힌 쪽지만 들고, 말 한마디 모르는 채 이 나라에 오셨습니다. 사 년 동안 다른 남자 다섯 명과 방 한 칸을 나눠 쓰며 세탁 공장에서 밤일을 하셨고, 다달이 번 돈의 절반을 고향에 부치셨습니다. 옥순 고모할머니가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요. 고모할머니는 전화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건 전부, 오빠가 남자 다섯이랑 한 방에서 잔 덕분이다.”

저는 그중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저는 바둑을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여덟 살 때 바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 수에 십 분씩, 때로는 그보다 오래 생각하셨고, 제가 서두르면 돌을 쥔 제 손 위에 손을 얹고 “판 전체를 먼저 봐라” 하셨습니다. 저는 노인들은 원래 그렇게 두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할아버지가 정하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날에 시간이라는 것이 없었던 사람, 밤일을 하고 서류 한 장을 받으려 줄을 서고 동전 하나까지 세던 사람이, 노년을 우리가 아는 누구보다 참을성 있는 사람으로 살기로 고르신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고, 저는 그게 아쉽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것도 할아버지가 정하신 일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저희가 그 짐을 지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저희에게 야구와 수박과 바둑을, 그리고 텔레비전과 말다툼하는 할아버지를 주고 싶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일부러 편안한 모습의 당신만 저희에게 보여 주셨고, 그 모습을 만드는 데 평생이 걸렸습니다.

옥순 고모할머니는 오늘 오시지 못했습니다. 사십 년 동안 교사로 일하실 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 덕분이라고, 여러분께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옥순 고모할머니, 이야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그 참을성이 어디서 왔는지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아직도 바둑을 두고, 아직도 느립니다. 제 아들이 여덟 살입니다. 바둑판을 꺼내 놓았습니다.

이 글이 통하는 이유: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출처를 밝힌 몇 가지 사실로 빠르게 전해지고, 곧바로 그 자리의 모두가 함께 가진 기억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모두가 할아버지와 보낸 자기만의 오후를 다시 보게 됩니다. 이 추도사는 할아버지가 입을 다무셨던 것을 한 번도 탓하지 않습니다. 그 침묵을 손주들을 위해 내린 선택으로 읽습니다. 이번 주에 내가 알던 사람을 달리 보게 만드는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면, 어디서 들었는지 밝히고, 사실은 서너 가지로 줄이고, 그것이 내가 이미 사랑하던 무언가 하나를 설명하게 하세요. 할아버지가 간직하신 물건 하나로 더 잘 전해지는 분이라면, 그 사람다운 추도사 예문에 실린, 물건 하나로 쓴 추도사가 다른 본보기를 보여 줍니다.

할머니의 자녀들 앞에서 말하기

무슨 말을 할지는 그날이 오기 전에 부모님과 고모, 이모, 삼촌들께 미리 말씀드리세요. 그래야 어떤 말도 뜻밖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분들께 질문을 하나씩 드리세요. 이를테면 그분들이 어렸을 때 할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얻게 되고, 그분들은 내가 그분들을 건너뛰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과 함께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집안 역사를 사람들 앞에서 바로잡지 마세요. 삼촌이 이야기를 틀리게 하셔도 그냥 두세요. 어떤 기억은 먼저 할머니의 자녀들 몫입니다. 그분들이 자란 집, 그분들이 할머니와 함께 견딘 힘든 시절. 그런 기억은 그분들께 맡기거나, 빌려 쓰기 전에 먼저 여쭤보세요.

반지를 낀 아주 늙고 주름진 두 손이 젊은 사람의 펼친 두 손 위에 놓여 있는 모습
사진: Mustak Jaman, Pexels

할머니를 위한 추도사에는 할머니라고, 할매를 위한 추도사에는 할매라고 쓰세요. 집에서 할머니가 대답하시던 이름을 쓰세요. 할머니든, 할매든, 우리 집에서만 부르던 이름이든 상관없습니다. 한국어에서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처럼 말 자체가 어느 쪽 집안 분인지를 알려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조모님 같은 격식 있는 말 말고, 실제로 부르던 말을 쓰세요.

손주만 답할 수 있는 질문 다섯

위의 추도사에서 한 줄이라도 빌려 오기 전에, 이 다섯 가지 질문에 이십 분을 써 보세요. 조부모님 추도사를 위해 만든 질문이고, 그 답은 대개 그 자리의 다른 누구도 들려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부엌 조리대 앞에서 작은 요리사 모자를 쓴 어린 손녀에게 음식 빚는 법을 보여 주며 웃는 할머니
사진: Mikhail Nilov, Pexels
  • 할머니 댁에서만 허락되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늦게까지 안 자기, 저녁 먹기 전에 먹는 아이스크림, 제일 좋은 의자, 밥 먹으면서 보는 텔레비전. 할머니가 나를 위해 만들어 주신 예외는, 나와 함께 있을 때 할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를 그 자리에 알려 줍니다.
  • 할머니는 나를 뭐라고 부르셨나요? 주민등록증에 적힌 이름 말고요. 조금 민망하다면, 그 이름은 추도사에 들어가야 합니다.
  • 하루 중 어느 한 시각에 할머니 댁에서는 어떤 소리, 어떤 냄새가 났나요? 아침 일곱 시, 일요일 정오, 온 가족이 모이는 식사 한 시간 전. 시각을 먼저 고르면 세부는 따라옵니다.
  • 할머니는 어린 시절의 내 부모님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부모님께 여쭤보세요.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를 하나 얻게 되고, 부모님은 내 추도사 안에서 조용한 자리 하나를 얻게 됩니다.
  • 할머니는 무엇을 모아 두셨나요? 비닐봉지를 곱게 개어 모아 둔 서랍, 내가 보낸 생일 카드 전부, 거실 벽에 차례대로 걸어 둔 내 학교 사진들. 할머니가 모아 두신 것은 할머니가 무엇에 마음을 쓰고 계셨는지를 그 자리에 알려 줍니다.

답 하나를 골라 뼈대로 삼고, 나머지는 세부로 쓰세요. 초안이 나오면 사촌 한 명에게 소리 내어 읽어 주세요. 사촌은 같은 할머니를 다른 각도에서 겪은 사람이라, 다른 사람 몫의 이야기를 찾아냅니다. 이모가 하려고 준비 중인 이야기, 또는 내가 아니라 내 형제에게 있었던 일. 내가 잊고 있던 세부를 되돌려 줄지도 모릅니다.

아직 여쭤볼 수 있는 질문

이 글을 쓰면서 아마 할머니께 끝내 여쭤보지 못한 질문들을 찾았을 것입니다. 왜 고향을 떠나셨는지, 스무 살 때는 어떤 분이었는지, 늘 하시던 그 말씀은 무슨 뜻이었는지. 그 답 가운데 일부는 아직 집안에 남아 있고, 그 답을 가진 사람들은 내 곁에 있습니다. 할머니의 자녀들, 그리고 어쩌면 아직 곁에 계신 할아버지.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여쭤볼 질문은 조부모님께도 똑같이 잘 맞고, 가족을 위해 내 목소리를 녹음하는 법에서 실제로 녹음하는 방법을 다룹니다. 장례식이 있는 주에 이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질문은 집이 다시 조용해진 뒤에 여쭙기가 더 쉬운 경우가 많고, 귀에 익은 목소리로 그 답을 담은 오후 한나절은 온 가족이 간직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Goodbye App에서는 이름을 적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내 목소리 녹음을 하나 더할 수 있습니다. 아직 곁에 계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지마다 이메일로 보낼 날짜와 시각을 최대 30년 뒤까지 직접 고르고, 발송되기 전까지는 비공개로 보관됩니다. 무료이며 웹과 Android에서 쓸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하신다면, 손주에게 쓰는 편지 안내가 바로 그분들을 위해 쓴 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할머니 추도사는 어떻게 시작하나요? 할머니가 내게 어떤 분이었는지를, 내가 부르던 호칭을 넣은 담백한 한 문장으로 시작하세요. “할머니는 칠 년 동안 날마다 교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다음 곧바로 한 장면으로 들어가세요. 감사 인사와 할머니 생애의 줄거리는 나중에 해도 되고, 인쇄된 순서지에 맡겨도 됩니다.

할머니 추도사는 얼마나 길어야 하나요? 혼자 말한다면 보통 3~5분, 여러 사람이 말한다면 한 사람당 2~3분입니다. 이 글의 추도사는 2분에서 약 4분까지이고, 짧은 추도사 예시 글에 1분, 2분짜리가 있습니다.

손주 여럿이 추도사 한 편을 함께 할 수 있나요? 네. 위의 사촌 세 사람처럼, 여러 목소리를 위한 추도사 한 편을 쓰고 저마다 한 부분씩 맡으세요. 한 사람만 말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이 모두를 대신해 읽고 나머지는 일어선 채 이름을 소개받으면 됩니다.

할머니를 잘 알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나요? 처음 부분에서 한 문장으로 그렇게 말하고, 내가 알던 부분을 이야기하세요. 찾아뵙던 날들, 전화 통화, 어느 오후 한나절. 부모님께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를 하나 여쭤보고,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인지 밝히세요. 솔직하고 작은 추도사가 빌려 온 거창한 추도사보다 낫습니다.

어린 손주나 십 대 손주가 조부모님 장례식에서 말해도 될까요? 아이가 원할 때만 하세요. 아이에게 고를 기회를 주고, 당일에 마음을 바꿔도 되게 하고, 아이가 믿는 어른이 가까이 있게 하세요. 더 어린 아이는 대신 시를 고르거나 카드를 만들면서, 장례 준비에서 손주로서 자기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성당이나 교회 장례식에서 손주가 말할 수 있나요? 대개는 할 수 있지만 먼저 여쭤보세요. 가톨릭 장례 미사에서는 많은 교구에서 고인을 기리는 말에 사제의 허락이 필요하고, 그 순서는 영성체 뒤, 고별식 바로 앞입니다. 다른 교회와 종교에는 저마다의 관례가 있으니 장례를 이끄는 분께 여쭤보세요. 그 자리에서 말할 틈이 없다면, 본당이 허락할 경우 위령 기도 시간에, 아니면 빈소나 장지, 식사 자리에서 말하세요.

끝까지 읽지 못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하나요? 멈추고, 숨을 쉬고, 그 줄이 다시 입에 붙을 때까지 종이를 보세요. 그리고 앞줄 가까이에 앉은 사람에게 사본을 한 부 건네 두세요. 끝내 이어지지 않으면 그 사람이 마저 읽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추도사를 울지 않고 읽는 법에 담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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