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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서 전하는 말 · 읽는 데 13분

아버지 추도사 예시: 바로 읽을 수 있는 전문 3편

딸이 전하는 아버지 추도사, 아들이 전하는 아버지 추도사, 그리고 평생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 아버지를 위한 추도사까지, 그대로 읽어도 되는 전문 3편과 각각이 왜 마음을 움직이는지 짚은 설명을 함께 실었습니다.

글: Goodbye App 팀 · 2026년 9월 15일

2026년 9월 29일 업데이트

펼쳐 놓은 앨범 위로 오래된 가족사진을 들고 있는 두 손
사진: cottonbro studio, Pexels

아버지에 대해 할 말이 없어서 추도사 예시를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40년 동안 쌓인 할 말이 있는데 말할 시간은 5분 남짓뿐이라서, 그리고 슬픔은 꼭 말을 찾으려는 바로 그 순간에 머릿속을 텅 비워 버리곤 해서 찾게 됩니다. 오늘 밤이 바로 그런 밤이라면, 다 괜찮을 겁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필요한 것은 진실한 이미지 하나, 이야기 3개, 그리고 마지막 한 줄입니다. 아래에 실은 추도사 전문 3편이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세 방향에서 보여 줍니다.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 아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그리고 평생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으신 아버지를 그 말을 기다리던 아들이 기억하는 추도사입니다. 어머니를 위한 추도사를 쓰고 계신다면, 어머니 추도사 예시 여섯 편을 따로 모아 둔 글이 있습니다.

베껴 쓰려고 읽기보다는 구성과 용기를 얻으려고 읽어 주세요. 추도사마다 뒤에 그 추도사가 왜 마음을 움직이는지 짚는 짧은 설명을 붙였고, 글 끝에서는 나의 아버지, 우리 집 차고, 우리 집 현관 불빛으로 바꿔 넣는 법을 볼 수 있습니다. 단계별로 차근차근 따라갈 방법이 필요하다면 추도사 쓰는 법을 다룬 저희 안내 글이 그 길 전체를 함께 걷습니다.

아버지를 위한 추도사가 다른 이유

다른 사람을 위한 추도사는 한 관계를 요약합니다. 아버지를 위한 추도사는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진 과정을 요약하고, 그것도 나눈 대화가 아니라 남아 있는 증거를 모아서 지어야 합니다. 바로 그 점이 유독 어렵습니다. 아주 많은 아버지들이 사랑을 말이 아니라 일로 하셨습니다. 차로 태워다 주고, 돈을 보태 주고, 새는 지붕을 올려다보고, 추운 데 서서 기다리는 일로 말입니다. 재료가 모자란 것이 아닙니다. 옮겨 적을 말이 없을 뿐인데, 추도사에 관한 조언은 대개 옮겨 적을 말이 넉넉하다고 전제합니다. 부담을 덜어 주는 사실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전기 작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자리에는 아버지와 30년을 함께 일하신 분들도, 제가 태어나기 전의 아버지를 아는 형제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이 아는 시절은 그분들 몫으로 남겨 두세요. 그분을 아버지로 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었고, 그것은 다른 누구도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판결을 내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추도사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두고 법원이 내리는 판결이 아닙니다. 자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자식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는 해낼 수 있습니다.

이 추도사 예시를 활용하는 법

아래에 나오는 이름은 모두 지어낸 것이고, 세부 내용은 모두 나의 이야기로 바꿔 넣을 자리입니다. 가져갈 만한 것은 구성입니다. 3편 모두 중심 이미지 하나, 구체적인 이야기 3개, 그리고 듣는 사람들이 품고 돌아갈 무언가를 건네는 끝맺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져가지 말아야 할 것은 이름만 바꾼 문장 그 자체입니다. 듣는 사람들은 언제나 알아챕니다. 각 추도사 머리에 소리 내어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적어 두었습니다. 앞의 두 편은 3분 안에 들어가고, 세 번째 편은 5분쯤 걸립니다. 더 짧은 추도사가 필요하거나 여러 사람이 차례로 추도사를 한다면, 저희가 모아 둔 짧은 추도사 예시가 바로 그런 경우를 위한 글입니다. 부모님이 아니라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위한 추도사를 쓰고 있다면, 손주들의 목소리로 쓴 할머니 추도사 예문을 참고하세요.

딸이 쓴 아버지 추도사 예시

소리 내어 읽으면 약 2분 30초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찍부터 다른 글자로 아버지를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 차에 가득 채워 두신 기름은 ‘사랑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켜 두신 현관 불빛도 ‘사랑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저희 집에 오실 때마다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부엌칼을 전부 갈아 두시던 것, 그것도 ‘사랑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언어를 유창하게 쓰셨습니다. 다만 듣는 사람이 그 언어를 알아야 했을 뿐입니다.

운전을 가르쳐 주시던 그해 여름, 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다 합쳐 마흔 마디쯤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운전대를 붙잡으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차를 산울타리에 처박은 날에도 그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가 집 앞에 평행 주차를 해냈을 때, 아버지는 연석을 한 번 보시고, 저를 한 번 보시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저는 그 뒤로 상도 받아 보았지만, 그 끄덕임보다 더 소중했던 상은 없었습니다.

결혼식 날 아침 여섯 시, 부엌에 가 보니 아버지가 이미 반짝반짝 닦아 두신 구두를 또 닦고 계셨습니다. 네 시간이나 일찍 양복을 차려입고 계셨습니다. 입장할 시간이 되자 아버지는 팔을 내밀며 말씀하셨습니다. “준비됐니?” 한 마디였습니다. 그 한 마디에 천 마디쯤이 실려 있었고, 저는 그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 하시던 그대로 저와 함께 버진로드를 걸으셨습니다. 천천히, 흔들림 없이, 이제껏 누구도 맡아 본 적 없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어젯밤 집에 돌아가 저희 집 현관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른 채, 벌써 몇 년째 제 아이들에게 그 언어로 말해 왔습니다. 말수 적은 사람은 침묵을 남기지 않습니다. 하나의 언어를 통째로 남깁니다. 가득 찬 기름통, 잘 갈린 칼, 켜 둔 불빛을 찾아보세요. 그것이 바로 저희 아버지였습니다. 날마다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정확히 알려 주시던 아버지였습니다.

이 추도사가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 말수 적은 아버지를 위한 추도사는 그 침묵을 변명하려 들 때 힘을 잃습니다. 이 추도사는 오히려 침묵을 번역합니다. 작은 행동들을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바꾸고, 듣는 사람들이 그 언어에 익숙해질 때까지 번역을 되풀이합니다. 그래서 “준비됐니?”라는 한 마디가 나올 무렵에는 그 말이 한 문단만큼의 감정을 실어 나를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분이었고 그것이 마음에 걸린 적은 없다면, 행동을 어휘로 삼는 이 구조를 그대로 빌려 오세요. 그 침묵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다면, 아래 세 번째 추도사가 그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아들이 쓴 아버지 추도사 예시

소리 내어 읽으면 약 2분 30초입니다.

저희 아버지에게는 딱 두 가지 상태만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고치고 계시거나, 고칠 무언가를 찾고 계시거나. 아버지 곁에 오래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여러분의 경첩까지 조여 놓으셨을 겁니다. 차고는 아버지의 왕국이었고, 저는 그곳에서 월급 없는 견습생으로 자랐습니다. 주로 손전등을 들고 있었는데, 아버지 말씀으로는 늘 잘못 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저는 아직도 손전등 하나 제대로 들 줄 모르는 다 큰 어른이고, 그 핀잔을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저와 아버지 사이에도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20대일 때는 빈방에 둘만 있어도 불꽃이 튀었고, 전화는 짧고 찾아뵙는 일은 그보다 더 짧던 때가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그 시절을 끝낸 것은 극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둘 다 먼저 취소하자는 말을 꺼내기 싫었던 낚시 여행 한 번이었습니다. 배 위에서 네 시간, 오간 말은 열두 마디,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 물 위 어디쯤에서, 둘 중 누구도 그 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서먹했던 시절은 끝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저희는 괜찮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로 사과합니다. 아버지는 미끼로 쓸 지렁이와 선외기에 넣을 기름으로 사과하셨고, 저는 이제 아버지의 방식이 제대로 통했다고 믿습니다.

병원에서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아버지는 고르게 돌지 않는 엔진을 들여다보시던 그 눈빛으로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참을성 있게,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 가면서요. 곧 겨울이니 타이어 공기압을 확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시기 직전에 제게 들려주신 말씀이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말씀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해 오시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여전히 무언가를 고치고 계셨던 겁니다. 그날 병문안 내내 아버지가 고치시던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셔도 제가 잘 굴러가도록 손봐 주고 계셨던 겁니다.

이제 차고는 조용하고, 손전등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 밖에 세워진 차들을 보니 이 동네의 절반은 아버지 손을 거친 모양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무엇을 고치셨든, 아버지의 진짜 일은 그보다 더 한결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멈추지 않고 굴러가게 해 주셨습니다. 타이어 확인하세요. 곧 겨울입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방식이었고, 저는 지금 아버지께 배운 그대로 여러분 모두에게 그 말을 전합니다.

이 추도사가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 힘들었던 시기를 정직한 한 문단으로 사실대로 말하되 누구의 잘잘못도 따지지 않고, 멀어졌던 일만큼이나 화해도 극적이지 않게 그려 냅니다. 아버지를 위한 추도사는 대부분 아버지를 성인처럼 떠받들다가 힘을 잃습니다. 이 추도사에서는 불꽃과 침묵이 먼저 있었기에 낚싯배 장면이 어떤 추모의 말보다 깊이 와닿습니다. 마지막 줄은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건넵니다. 그래서 추도사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목소리로 끝납니다.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지를 위한 추도사 예시

소리 내어 읽으면 약 5분입니다. 아버지가 무슨 말씀이든 해 주시던 순간을 일주일 내내 떠올려 보았는데 끝내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면, 이 추도사에서 시작하세요.

저는 지난 일주일 동안 아버지가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던 순간을 떠올려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는 여러분께 솔직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없는 말을 지어내는 분이 아니셨고, 저도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러지는 않겠습니다.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제 생일에도, 전화기 너머로도, 두 주 전 병실에서 저희 둘 다 지금이 어떤 자리이고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고 있던 그 순간에도 그 말씀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듣고 싶었습니다. 서른 해쯤은 정말 간절하게 듣고 싶었고, 오늘 아침 이 자리에서 안 그런 척하지도 않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지난 화요일에 누나와 저는 아버지 책상에서 일기장인 줄 알았던 공책 한 권을 찾았습니다. 일기장이 아니었습니다. 날짜만 적힌 공책이었습니다. 시합 날짜, 진료 예약, 몇 시에 집에서 나서야 하는지. 저는 그것을 세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일곱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나간 시합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오셨습니다. 학부모들이 모여 앉은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운동장 맨 끝, 철망 옆이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개도 데리고 나가지 않을 날씨의 토요일 아침을 십일 년 동안 그렇게 보내셨습니다. 저에게 잘했다고 말씀하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한 번도 빠지신 적도 없습니다.

제가 새벽 비행기를 탈 때마다 아버지는 다섯 시 반이면 이미 시동을 걸어 놓고 제 자취방 앞에 와 계셨습니다. 제가 그 방에 사는 내내 한 번도 빠짐없이 그러셨습니다. 공항까지 가는 차비는 “그냥 나가는 돈”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지 말라고 하셨던 중고 오토바이의 브레이크를 말없이 손봐 놓으시고는, 오토바이 이야기는 끝내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스물한 살에 일을 크게 그르쳤을 때도 아버지는 저를 앉혀 놓고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차에 태우셨습니다. 라디오를 켜 놓고 두 시간, 오간 말은 마흔 마디쯤이었고, 도착해서 시동을 끄신 뒤에도 잠깐 그대로 앉아 계셨습니다. 그 잠깐이 아버지가 가진 감정 표현의 전부였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알아서 할 거다.” 그날의 훈계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그 뒤로 지금까지 알아서 해 오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 아버지는 네 시간을 운전해 병원에 오셔서, 복도에 앉아 같은 신문의 같은 면을 이틀 동안 읽으셨습니다. 제가 겨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일어났네.” 그러고는 다시 네 시간을 운전해 집으로 가셨습니다. 저희는 그 일을 다시 입에 올린 적이 없고 이제는 올릴 수도 없게 되었지만, 둘 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긴 세월 동안 제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었는지 이제 압니다. 저는 아버지가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일곱 살이던 해부터 공책에 날짜를 적어 가며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같은 분들이 말 대신 하시는 일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을 대신하는 변변찮은 것도 아니고, 모자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아버지는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제 평생을, 추운 데서, 맨 뒤에서, 아무 말씀도 없이 지키셨고, 그것은 말 한마디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치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 자리에 서서 아버지가 다정한 분이셨다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여기 계신 절반은 아버지를 아시니 웃으실 겁니다. 저는 다정한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오셨습니다. 비가 와도 오셨고, 번거로워도 오셨고, 몸이 고되셔도 오셨고, 당신께 돌아올 것이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에도 오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찾지 마십시오. 그 자리에 아버지가 와 계셨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아버지는 여기 계신 많은 분들 곁에 그렇게 와 계셨습니다. 이 방 뒤쪽을 한번 돌아봐 주십시오. 아버지는 당신을 위해 와 달라고 누구에게도 부탁하신 적이 없는데, 오늘 이렇게들 와 주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것도 아버지가 또 한 번 이기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저는 끝내 그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듣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신 세어 보았고, 그 수는 토요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였습니다.

이 추도사가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 끝내 듣지 못한 말을 첫 십 초 안에 꺼내 놓고,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라고 소리 내어 닫아 버립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은 이 글이 원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놓은 채 증거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다음부터 말하는 사람은 아버지가 사랑이 많은 분이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세어 보여 주고, 자리를 지킨 일이 그 증명이 되게 둡니다. 옮겨 적을 말이 없어서 빈 종이만 바라보고 있다면, 추모의 말보다 장부 한 권이 더 잘 통합니다.

추도사 3편의 공통점

뒤로 파란 소파가 보이는 거실, 낮은 탁자 위에 놓인 카세트 녹음기
사진: Caleb Oquendo, Pexels

세부 내용을 걷어 내면 똑같은 뼈대가 세 번 드러납니다. 첫마디에서 자리를 잡는 중심 이미지 하나: 현관 불빛, 차고, 날짜가 적힌 공책. 이야기는 30개가 아니라 3개이고, 하나하나가 1분 안에 제대로 들려줄 수 있을 만큼 작습니다. 형용사 대신 물건과 행동이 감정을 전합니다. 누구도 “아버지는 헌신적인 분이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현관 불이 계속 켜져 있고,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차가 집 앞에 와 있을 뿐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끝까지 자식의 자리에 머물고, 제 크기를 정직하게 지키며,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결산하는 척하지 않습니다. 힘들었던 이야기는 많아야 하나이고, 그마저 사랑으로 감쌌다가 놓아 줍니다. 그리고 모든 끝맺음은 조문객들에게 할 일이나 간직할 것을 건넵니다: 찾아볼 불빛 하나, 되뇔 말 한마디, 세어 볼 숫자 하나. 할 일을 건네받은 슬픔은 결론만 건네받은 슬픔보다 한결 순하게 지나갑니다.

나만의 추도사로 만드는 법

이미지부터 시작하세요. 이미지는 질문 하나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실제로 하던 일 가운데 가장 그리울 일은 무엇인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아니라, 함께 무엇을 했는지입니다. 운동장 철망 옆에 서 있기. 손전등을 잘못 들고 있기. 집 앞에서 주차를 배우기. 그런 일이 거의 언제나 중심 이미지가 되고, 이야기들은 저절로 그 뒤에 줄을 섭니다.

그다음 이야기 3개를 모으세요. 쓰기 전에 전화를 한 통 거세요. 형제자매, 삼촌, 또는 아버지와 20년을 함께 일한 분에게 말입니다. 막연한 인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어느 오후의 이야기를 물어보세요. 아버지의 경우에는 이것이 평소보다 더 중요합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는 하셨을 가능성이 크고, 그래서 적어도 하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를 얻게 됩니다. 빌려 온 구성에 우리 가족만 아는 이야기를 더하는 것, 위의 예시가 모두 따른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끝으로, 마지막 한 줄을 가장 먼저 쓰세요. 추도사가 “타이어 확인하세요” 또는 “토요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를 향해 간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 앞의 모든 문장이 저마다 할 일을 알게 됩니다.

추도사 당일, 끝까지 읽어 내는 법

끝까지 읽어 낼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것은 거의 누구나 겪는 일이고,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글자를 크게, 두 줄 간격으로 인쇄하세요. 연단에 물을 올려 두세요. 한 사람에게 대신 읽어 줄 사람이 되어 달라고 정식으로 부탁하고, 원고 한 부를 들고 있다가 내가 이어 가지 못하면 끝까지 읽어 달라고 하세요. 어떻게 되든 추도사는 끝까지 전해진다는 것을 알면, 오히려 대부분은 직접 끝까지 읽어 냅니다. 그리고 적어도 두 번은 소리 내어 연습하세요. 목이 메는 문장은 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따로 정리한 울지 않고 추도사를 읽는 방법 안내 글도 있습니다. 녹음해서 들어 보는 연습으로 가장 어려운 문장을 연단에 서기 전에 미리 누그러뜨리는 방법도 담았습니다.

오직 나만 전할 수 있는 말

조심스럽게,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립니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 서 본 사람은 달라집니다. 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깨닫습니다. 언젠가 내 아이들도 바로 이런 밤을 맞게 되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검색 결과, 텅 빈 페이지, 내가 어떤 말이 전해지기를 바랐을지 짐작하는 일까지. 그 모든 것을 아이들이 겪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Goodbye App에서는 내 말로 전하는 작별 인사를 쓰고 내 목소리로 녹음할 수 있습니다. 안내에 따라 채우는 주제가 있어 빈 화면만 바라보고 있을 일이 없고, 내가 세상을 떠난 뒤 내가 고른 사람에게 이메일로 전해지도록 예약할 수 있습니다. 발송될 때까지는 비공개로 보관되며, 무료이고, 웹과 Android에서 쓸 수 있습니다. 내 장례식에서 들려줄 메시지를 녹음하는 법을 다룬 저희 안내 글에서 가족들이 그런 녹음을 실제로 어떻게 쓰는지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한 추도사는 자식이 남은 증거를 하나하나 세어 보고, 그것이 무엇을 뜻했는지 아름답게 짐작해 보는 일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녹음해 둔 작별 인사가 있다면 아이들은 짐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아버지 추도사는 얼마나 길어야 하나요? 중심이 되는 추모의 말이라면 3~5분, 여러 사람이 차례로 말한다면 2~3분이 알맞습니다. 위의 앞선 두 편은 3분 안에 들어가고, 세 번째 편은 5분쯤 걸립니다. 1분에 몇 단어가 적당한지는 저희 짧은 추도사 안내에서 확인하세요.

형제자매와 추도사 하나를 나눠서 해도 되나요? 네, 그리고 대개 아주 아름답게 어우러집니다. 시간 순서가 아니라 주제별로 나누세요. 한 사람은 차고 이야기를, 다른 한 사람은 운동장 철망 옆 이야기를 맡는 식입니다. 끝맺음을 누가 할지도 미리 정해 두세요.

힘들었던 시절도 이야기해야 할까요? 사랑으로 감싼 정직한 한 문장은 나머지 모든 말을 더 믿음직하게 만듭니다. 모든 일을 낱낱이 따지는 것은 다른 자리의 몫입니다. 위의 낚싯배 예시 정도를 목표로 하세요.

아버지가 사랑한다는 말씀을 한 번도 안 하셨다면요? 그 사실을 앞쪽에서 한 번만 말하고, 거기서 멈춘 다음 증거가 대신 말하게 두세요. 세 번째 추도사가 하는 그대로입니다. 그 자리에서 가장 흔한 마음이면서도 소리 내어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입 밖에 내는 순간 그토록 깊이 와닿습니다.

중간에 무너져 버리면 어떻게 하나요? 잠시 멈추고, 물을 마시고, 얼굴 하나를 찾아 바라본 뒤 계속하세요. 그 자리의 누구도 점수를 매기지 않습니다. 아버지 장례식에서 흘리는 눈물은 추모의 말을 끊는 것이 아니라 추모의 일부입니다. 대신 읽어 줄 사람은 정말로 더 이어 갈 수 없는 드문 경우를 위해 있는 것이고, 그렇게 마무리되더라도 충분히 명예로운 일입니다.

웃긴 이야기로 끝내면 이상할까요? 오히려 오래된 전통입니다. 한 번 웃은 자리에서는 눈물도 더 편하게 흐릅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한 아버지라면, 자신을 두고 하는 맺음말이 진실할 수 있을 때 굳이 엄숙하기를 바라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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